편집위원 지만호
편집위원 지만호

 

2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320만 소상공인의 생활은 피폐되어있다. 아울러 석유를 비롯하여 원자재 값 상승으로 경제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 탄생한달 째 요소요소에서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새 정부의 조직구성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득권자들의 정부 길들이기라면 다수의 국민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소수의 만족을 위한 폭력적 행사라고 볼 수 있겠다. 10일 동안 물류운반을 볼모로 파업을 단행한 민주노총 소속 화물연대의 시위가 정부중재(안전운임제)로 중단되었지만 휴화산으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이념적 갈등으로 前 現職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의 시위는 짜증난 민생들의 이맛살을 더욱 찡그리게 하고 있다. 왜 우리는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극한 갈등과 시기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가? 잘못된 관행을 탈피하는 선진사회로의 변화를 가지면 안 되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 해답은 이슈를 부추기는 정치인과 언론의 책임도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길 건너 불난 집 구경만 하고 있는 중도적 입장에 계시는 양심학자들과 시민사회 원로들이다. 왜냐면 새 정부가 운영한지 1년이라도 지나고 나서 잘잘못을 찾아 평가해야만 모두가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정확성도 없고 확신도 없이 섣불리 판단하여 행동한다면 다수에게 엄청난 부작용만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민생의 몫으로 돌아간다면 누구를 위한 정치이며, 언론이며, 가르침의 위에서 계시는 양심학자들과 시민사회 원로들인가? 우리나라에 보수성향시민단체와 진보성향시민단체의 숫자는 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세력을 가지고 국가 미래 비전을 위한 에너지 발산이 아닌 투쟁과 파업이 전부라면 이것은 분명히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배반이다. 끝으로 한마디 더 붙인다면 징키스칸의 명언을 생각한다. 적 (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는 말을 민초들은 새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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